감동시 281

내 어린 크리스마스

내 어린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왕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함박눈 펑펑 내리는 산동네 골목방안엔 은은한 촛불 켜지고거리엔 캐럴송, 교회에선 종소리 울려 퍼진다천사 같은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기쁨에 겨워 지르는 웃음소리 들리는 듯하다. 왜 그렇게 탐스러운 함박눈은내 어린 크리스마스에만펑펑 내렸을까 어떻게 그 산동네 으슥한 골목에더 영롱하고 훈훈한 촛불이뭉쳐져 있었을까 무엇 때문에그 캐럴과 종소리는축복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을까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던그 천사 같은 아이들은다 어디 갔을까 -임영준. 내 어린 크리스마스-

감동시 2023.03.28

7월

벌써 7월이라니참으로 빠른 게 세월이구나초목들 성장은 절정으로 치닫고불 타는 듯 태양은 대지를 달군다 무더운 한여름7월이 지금 우리들 앞에 왔으니작열하는 태양의 열정으로초고속 성장하는 초목의 젊음으로우리들! 일상을 살아 봅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딱 맞구나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어느새 7월 눈 깜짝할 새두툼하던 달력이 얄팍해졌다 하지만 덧없는 세월이라슬퍼하지 말자 잎새들 더욱 푸르고꽃들 지천에 널린 아름다운 세상 두 눈 활짝 뜨고힘차게 걸어가야 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몸 드러내는 정직한 시간 마음의 빗장 스르르 풀리고사랑하기에도 참 좋은 7월이 지금우리 앞에 있으니 -정연복. 7월-

감동시 2023.03.24

갈대는 배후가 없다

청량한 가을 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의 속된 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 들어 선문(禪門)에 들 듯 젖은 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老後)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댄 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 반골(反骨)의 동지가 있을 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 그리하여 이 가을 볕으로 바람으로 피를 말린다 몸을 말린다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해 -임영조 작-

감동시 2022.08.24

민들레

화단 모서리 후미진 곳 모진 추위 견뎌내고 건강하게 피었구나 아이를 닮은 민들레 봄볕에 미소가 아름답구나 관심을 주지도 않았는데 핀 줄도 몰랐는데 겨울 모진 추위 견뎌내고 제 힘으로 꿋꿋하게 피었다. 참으로 대견하다.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한다. 시인 이기철은 민들레를 이렇게 읊었다. 날아가 닿는 곳 어디든 거기가 너의 주소다 조심 많은 봄이 어머니처럼 빗어준 단발머리를 하고 푸른 강물을 건너는 들판의 막내둥이 꽃이여 너의 생일은 순금의 오전 너의 본적은 햇빛 많은 초록 풀밭이다 달려가도 잡을 수 없던 어린 날의 희망 열다섯 처음 써본 연서 같은 꽃이여 너의 영혼 앞에서 누가 짐짓 슬픔을 말할 수 있느냐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 저항도 목표도 없이 떠나는 너는 가장 큰 자유를 지닌 풀밭..

감동시 2022.06.09

벚꽃의 꿈

쏟아지는 햇살 받으며 눈부신 하얀 미소로 피어났었지 가지마다 벙글어 손꼽아 기다리게 했었지 화려한 빛깔로 모두를 즐겁게 하던 꽃이여 그러나 벚꽃이 지고 있다. 피어날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못지않구나. 무수한 꽃잎들 하얀 눈발 날리듯 흩날리누나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이 부신가 일시에 큰소리로 환하게 웃고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삶이 좋아라 끈적이며 모질도록 애착을 갖고 지저분한 추억들을 남기려는가 하늘 아래 봄볕 속에 꿈을 남기고 바람 따라 떠나가는 삶이 좋아라 -벚꽃의 꿈. 유응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절정의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들을 쌓았던가.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어찌 이리도 짧은지 영화로운 날들 한순간이라니 흩날리는 꽃잎이 너무 아쉽다. 가야할 때를 알..

감동시 2022.06.08

4월의 진달래

찬바람 꽃샘추위 이겨내고 진달래는 메마른 가지에 꽃부터 피운다. 잎새 싹트기 전 고운 분홍 꽃부터 피운다. 꽃이 부족하다구요? 천만에 말씀. 온 산, 온 골짝이 꽃으로 불탄다. 상하좌우, 위, 아래, 온 천지가 진달래다. 천주산에는 진달래가 꽃으로 산불을 낸다. 어디서들 왔는지 선남선녀들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꽃이 좋아 꽃을 찾은 이들 울긋불긋 꽃단장하고 나들이 나왔다. 즐거워하는 그들의 환한 미소가 아름답다. 여기저기 다투듯 찍어대는 사진 속에도 온통 진달래꽃들이 지천이다.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 꽃만 피운 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 몸 살라 불꽃 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4월의 진달래. 백우선-

감동시 2022.06.07

유월의 시

검은 돌담 에워 쌓은 제주 올레 들판 길에 물결처럼 바람이 분다. 수확을 앞둔 보리들 파도타기 하듯 떼 지어 춤들을 춘다. 눈부신 금발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고운 머릿결 기름친 듯 빛난다. 바람은 즐거운 듯 미소 지으며 지나고 하늘은 티 없이 맑은 눈빛으로 가만가만 바라본다. 잔 물결 큰 물결 출렁이는 바다인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다. 유월의 제주 올레 보리밭이여!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정한 하늘이 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 사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단가..

감동시 2022.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