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암에서 상선암에서 차가운 하늘을 한없이 날아와 결국은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흙 한 톨 없고 물 한 방울 없는 곳에 생명의 실핏줄을 벋어 내릴 때의 그 아득함처럼 우리도 끝없이 아득하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위 틈새로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어 세운 나무들의 모습을.. 감동시 2011.10.04
세우 세우(細雨) 가는 비 꽃잎에 삽삽이 내리고 강 건너 마을은 비안개로 흐리다 찔레꽃 찬 잎은 발등에 지는데 그리운 얼굴은 어느 마을에 들었는가 젖은 몸 그리움에 다시 젖는 강기슭 시 : 도종환 지음 감동시 2011.10.04
어린이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에 개나리꽃이 진하게 피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학교 가고 없고 아이들이 금그어놓고 놀다간 사방치기 그림만 땅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 앞에 서서 폴짝 뛰어 보려다 멈칫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폴짝 폴폴짝 뛰어 건넜다 개나리꽃이 머리를 흔들며 깔깔대고 웃.. 감동시 2011.10.04
빈 교실 빈 교실 천장이 낡아 떨어져 나간 사이로 건물의 빗장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이던 그 교실이 그래도 나는 좋았다 도서열람실이라고 하지만 잘 닫히지 않는 창 틈으로 명지바람이 다녀간 것말고는 늘 비어 있는 그 교실에서 글 쓰는 걸 배우려는 아이들과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해 시를 쓰기도 .. 감동시 2011.10.04
봄의 줄탁-봄. 개화 봄의 줄탁 모과나무 꽃순이 나무껍질을 열고 나오려고 속에서 입술을 옴질옴질 거리는 걸 바라보다 봄이 따뜻한 부리로 톡톡 쪼며 지나간다 봄의 줄탁 금이 간 봉오리마다 좁쌀알만한 몸을 내미는 꽃들 앵두나무 자두나무 산벚나무 꽃들 몸을 비틀며 알에서 깨어 나오는 걸 바라본다 내.. 감동시 2011.09.30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친구나연인에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 감동시 2011.09.30
그리운 강 그리운 강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 감동시 2011.09.30
산경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 감동시 2011.09.29
산벚나무-3월 산벚나무 아직 산벚나무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울물 흘러내리는 소리 들으며 가지마다 살갗에 화색이 도는 게 보인다 나무는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았지만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들의 한복판을 지나왔을 뿐이다 겨울에 대하여 또는 봄이 오는 소리에 대하여 .. 감동시 2011.09.29
홍매화-3월 홍매화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 자락 덮어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 감동시 2011.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