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전남고흥군 팔영산 등반

雲舟미카엘 2011. 9. 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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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고흥군 팔영산 등반


일시 : 1994년 10월 30일 

 

평소보다 한 시간여 빠른 5시경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아직 어둠이 짙었고 주위는 고요하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한산한 도심 거리를 빠져 나오니 상쾌하고 즐겁다.

역 광장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제각기 행선지를 향해 떠나고 있다. 도심 역 광장에 웬 단풍이 지천인고 했더니 울긋불긋 원색 등산복 차림의 산꾼들이 아닌가?

7시 30분, 마산역을 출발한 버스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섬진강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 아침 요기를 하고 순천을 향해 달린다. 남해고속도로 순천 IC에서 순천 시내를 경유 23번 국도를 타고 벌교를 향한다. 벌교에서 좌회전하여 34번 국도를 타고 고흥 반도로 접어든다.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능가사에서 하차하니 시간은 대략 10시.

능가사 앞에는 제대로 갖추어진 주차장은 없었으나 소규모의 무료 주차장이 있었다. 절 입구 왼편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고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중앙에 웅장한 대웅전이 오랜 역사를 간직한 듯, 빛바랜 단청과 고아한 모습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한 눈에 역사가 오랜 고찰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최근에 급작스레 축조한 경박한 세간의 절과는 품격이 다르다.

대웅전 뒷편으로 멀리 팔영산의 8개 봉우리가 공룡등처럼 절묘한 자태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팔영산(609m)은 일곱 개의 암봉이 남쪽으로 일직선 방향으로 바위 장벽을 쌓고 있으며, 주봉은 일곱 암봉 남쪽에서 동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펑퍼짐하게 솟아 있다. 옛 자료에 의하면 유영봉, 군선봉, 성주봉, 천주봉, 별봉, 팔응봉, 일출봉 등, 각 봉우리마다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기록이 불분명하여 이들 이름이 각각 어느 봉우리를 명명하는지 알 길이 없다.

전설에 의하면 세수 대야에 비친 팔영산의 절경에 감탄한 중국 위왕이 신하들을 시켜 이 산을 찾게 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팔영산의 그림자가 한양에까지 드리워져 팔영(八影)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팔령산(八靈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이라 불렸으며 옛날에는 많은 수도자들과 고승, 명인, 신선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사천왕문 좌측의 상점 앞을 지나 소로를 따라 200m쯤 걸어면 길 우측에 석종과 부도를 만난다. 생김새는 여느 절에나 있는 동종인데 돌을 다듬어 정교하게 무늬를 새긴 그 솜씨가 놀랍다. 이 석종은 어떻게 이 길가에 버려진 듯 놓여 있을까? 그 옆에 있는 부도와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길을 따라 2-300m쯤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을 따라 계속 1km쯤 가면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호젓한 오솔길이 계속된다. 20분쯤 오르면 흔들바위에 이른다. 여기서 숨을 돌리고 땀을 씼는다. 30여분 계류를 우측에 둔 소로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눈앞에 우뚝 제1봉이 앞을 막는다. 경사가 심한 암벽을 밧줄을 잡고 오르면 시야는 일망무제. 동편으로는 멀리 순천만, 여수반도가 지척에 있고, 서편으로 보성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와 점점히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산야에 올망졸망 흩어져 평화롭기만한 인가(人家), 늦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반사되는 물빛,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열심히 카메라 셔트를 눌렀으나 사진이 제대로 나올까 걱정스럽다.

4봉과 6봉을 오르는 길이 노약자와 여성에게는 다소 힘드는 난코스이다. 그러나 적재적소에 밧줄이나 철책을 설치하여 겁 먹지만 않는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스릴 만점의 절경 코스이다.

하산은 6봉에서 7봉으로 가는 도중에 우측으로 내려가는 소로를 찾으면 된다. 1시간여 호젓한 숲길 소로를 따라 내려오면 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면 들녘 우측에 산장이 한 채 자리 잡고 있다.

뜰 가운데 있는 조그만 연못과 두 그루 소사 분재가 이 늦가을 오후, 나그네의 눈에는 처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닭구이 요리를 안주로 하여 동동주를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하니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다. 저녁으로 백숙을 배불리 먹고 능가사 앞 주차장으로 집결, 4시 30분경 승차 귀로에 올랐다.

남해고속도로 지수-의령 구간부터 귀가하는 주말 단풍 관광 차량의 폭주로 고속도로는 장시간 정체 현상을 초래했다. 차안에는 풍악이 요란하게 울리고 이 순간 흔들고 노래하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하게 될까봐 모두들 비지땀을 흘리며 목청을 돋운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둘째는 벌써 잠들고 큰애가 반긴다.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즐겁고 멋진 주말이었다. 내일 아침 출근길은 경쾌하고 산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