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시

수연산방에서

雲舟미카엘 2011. 9. 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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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산방에서

 

 

문향루에 앉아 솔잎차를 마시며

삼 면 유리창을 차례대로 세어본다

한 면에 네 개씩 모두 열두 짝이다

 

해 저문 뒤

‘무서록’을 거꾸로 읽는다

 

세상일에 순서가 따로 있겠는가

저 밝은 달빛이 그대와 나

누굴 먼저 비추는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누구 마음 먼저 기울었는지

무슨 상관 있으랴

 

집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에 앉은 동산도 두 팔 감았다 풀었다

밤새도록 사이좋게 노니는데

 

시작 끝 따로 없는

열두 폭 병풍처럼 우리 삶의 높낮이나

살고 죽는 것 또한

순서 없이 읽는 사람이

먼 훗날 또 있으리라

 

시 : 고두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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