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장

일상의 소중함

雲舟미카엘 2011. 9. 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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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중함

 

 

저는 시카고에 살고 있고, 남편과 아이들 셋에, 아흔이 되신 시할머님과 7학년 조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중의 직업은 베이비시터이고, 주말에는 한국학교 교사이기도 합니다.

벌써 금요일입니다. 참 빠릅니다. 아침이구나, 하면 저녁이고, 주일이구나, 하면 어느 덧, 토요일입니다. 아이들이 방학인 이번 주는 더 빠르게 지난 듯합니다. 돌보고 있는 10개월이 조금 지난 아이의 활동량도 점점 늘어갑니다. 날마다 똑같은 생활, 어찌보면 참 단조로운 일상입니다. 일어나고, 밥하고, 아이들 돌보고, 먹고, 자고…, 내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실컷 책 좀 읽고, 푹 쉬고 … 하지만 정말로 저는 이렇게 못하는 지금의 이 생활을 즐기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까닭입니다. 일어나서 아이들 안아 주고, 밥 해 주고 이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어느 날, 밤에 잘 자고 일어났는데 전혀 허리를 움직일 수 없는 날이 있었습니다. 일어나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엄청난 통증이 오기 때문에 방 안의 화장실에도 기어서조차 갈 수 없어서 오줌도 싸고, 미련하게도 내일 이면 낫겠지 낫겠지, 하면서 대 소변 받아낸 지 며칠 만에 119 부르고, 들것에 실려 갔습니다. 부끄럽다고 뭐 덮을 것을 달라고 하니까 하얀 천을 얼굴까지 푹 덮어 주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대접을 받는구나...싶어졌습니다.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병원으로 가는 앰블런스 안에서, 무슨 무슨 검사다…하며 들어 가게된, 그 관 같은 곳에서, 뚜껑도 덮인 채 지내는 동안…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살아 가는 것인가…!??이대로 죽어 가는 것인가…!??아이들은, 남편은…??큰 아이가 3학년, 둘째가 1학년, 막내가 3살때 겪었던 일입니다. 원인을 밝히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 동안 제가 눈물로 절규하며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걷게만 해 주십시요.??죽게 하시면 죽는 것 하나도 겁나지 않습니다만, 아이들이 아직은 어립니다.?

"아이들 안아 줄 수 있고, 밥 해 줄 수 있고…, 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일상의 생활을 하게 해 주십시요…?솔직히 남편보다도 어린 아이들로 인해 더욱 더 절절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급성 요추부 염좌?라는 병명과 함께 2 주간의 절대 안정의 누워만 있는 시간들을 지나서, 한 달쯤의 긴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며 감사하는 까닭입니다. 숨 쉴 수 있음이 감사하고…

사실은 말이 바꿔졌습니다. "숨 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산소 호흡기 끼고 있는 환자도 얼마나 숨 쉬고 싶을까…숨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니 누군가가 숨 쉬게 해 주셔야 함도 알았습니다. 볼 수 있는 눈 주셔서 감사하고, 들을 수 있는 귀 주셔서 감사하고, 제발 걷게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뛸 수 있는 다리 주셔서 감사하고…가족 주셔서 감사하고… 아, 하늘을 두루마기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이 부어 주시는 사랑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집 앞 잔디에 오리 두 마리가 놀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오리,다람쥐,토끼들이 자유롭게 어디나 누비고 다닙니다. 오리 가족들이 차 길을 가로 질러 나들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무리 바쁜 시간이어도?뒤뚱 뒤뚱? 그 오리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차 안에서 조용히 다 기다려 주는 모습들이 처음엔 그렇게 신기하더니 이제는 점점 익숙해집니다. )

그 옆에 토끼도 함께 있습니다. 다섯 마리가 뭔가 얘기를 나누나 봅니다. 오리가 물 속에 있을 때는 너무나 평안해 보이고 우아해 보이는데, 뭍으로 나온 오리는 영 볼품이 없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은혜이고 평강인지를 다시금 새기는 아침입니다. 평안하십시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읽고"(6067번 글) 미국 시카고에 사시는 정은미님이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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