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일 금요일 중앙일보 26면 기사를 읽었다. 테너 조용갑의 인생역전, 인간 승리 살아온 이야기였다. 감동적인 인생살이라 그 내용의 일부를 적어본다.
테너 조용갑
섬마을 아이, 권투선수, 신학도...그리고 테너 조용갑
“포기하지 말자, 꿈을 찾아 헤매자”
2011년 7월 1일 금요일 중앙일보 26면 문화에서
조용갑(41)씨는 전남 서쪽 끝 섬 가거도 태생이다. 목포에서 통통배로 3시간 들어가야 한다.
아버지는 어부였고 섬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늘 배가 고팠고 먹을 걸 찾는 게 일이었다. 그는 동네의 문제아였다. 중학교 졸업 직전 상경했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팔았고 지하철 안에서 비옷 엑세서리 등을 팔았다. 중국집 배달원, 아파트 단지 세차 요원, 한때는 권투선수로도 뛰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도 가난도 해결되지 않았다. 신학자가 될 생각으로 신학대학에도 등록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때 교회에서 노래를 배우게 됐다. 한 목사가 지원해준 유학 자금을 들고 무작정 이탈리아 로마로 떠난 때가 1997년 1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합격했다. 정식 레슨도 받은 적 없고 악보도 볼 줄 모르던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하루에 8-10시간 연습했던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지금 유럽 각국의 극장에서 주역으로 노래하는 테너가수다.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오델로의 오델로처럼 드라마틱한 역할을 주로 맡는다. ‘언제나 가난한 환경과 처지를 탓하기만 하며 자랐어요 가슴에 뜨거움이 있었죠, 지금은 그 불길의 성격이 바뀌었어요. 세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노래와 음악 덕분이라 믿어요.
한때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운 성악가들을 못 견디게 부러워했어요. 제어린 시절은 불편하고 힘들었죠. 하지만 바다로 산으로 다니면서 얻었던 상상력, 세상에 대한 의문, 심지어 분노까지도 지금 오페라 무대를 만드는 저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이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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