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 여행일기
일시: 2017년 11월 20일-12월 1일
1일차(11월 20일)
인천공항 출발. 델리 도착. 델리 숙박.
2일차(11월 21일)
델리 공항 출발. 카트만두 도착. 오후 카트만두 시내 관광.
카트만두
인구 약 100만명 거주하는 네팔의 수도.
하누만도카
12-18세기 건립한 왕궁. 네팔 왕족이 거주했던 왕궁. 곁에 더르바르 광장이 있다.
왕궁 안에 있는 바산타프르 9층 목조탑은 2015년 지진으로 무너져 현재 2층까지만 남아있다. 궁의 이름은 힌두교의 원숭이 수호신 하누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쿠마리사원
목조사원. 힌두교의 처녀신 쿠마리의 화신인 라즈 쿠마리(Raj kumari)가 살고 있다.
현재의 라즈 쿠마리가 창문을 열고 우리 일행에게 모습을 보여주었다.
쿠마리(Kumary, Kumary Devi): 힌두교 신화에 바탕을 둔 네팔의 전국민적 신앙의 대상. 어린 소녀를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신의 화신인 쿠마리로 선정하고 전 국민이 숭배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상처가 나 피를 흘리거나 초경을 하면 바로 쿠마리의 자격이 상실되어 새로운 쿠마리 후보자를 선정한다. 명문가 여자아이 4-7세, 가는 목, 소를 닮은 속눈썹, 사슴 같은 허벅지, 사자 같은 가슴, 오리 같은 목소리, 까만 머리카락, 작은 손과 발, 등 32가지 심사기준이 있다. 쿠마리는 가족과 떨어져 사원에서 산다. 외부출입도 금지된다.
3일차(11월 22일)
오전 카트만두 스와얌부나트 사원 관광.
스와얌부나트 사원
아쇼카왕이 건립. 카트만두 서쪽 언덕에 위치. 일명 원숭이 사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티벳불교의 성지. 기원전 3세기경 인도 아쇼카왕이 카트만두 순례후 건립했다고 한다. 14세기 이슬람 세력 침공 후 파괴된 것을 말라 왕조에 의해 재건되었다.
사원에 올라서면 카트만두 시내가 한 눈에 바라보인다. 아득한 옛날 카트만두 분지가 커다란 호수였을 때 문수보살이 호수의 물을 흘려보내 그 자리에 사람들이 살도록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때 맨 처음 물위에 드러나 한 줄기 눈부신 광명을 발했다는 성지가 바로 이 사원이 선 자리라 한다.
사방을 바라보는 부처님의 눈을 그린 대탑(대형반구형스투파)을 중심으로 작은 탑과 법당, 기념품 매점 등이 있다. 신자들은 탑을 돌면서 원통형 마니차를 손으로 돌린다. 북으로 시선을 돌리면 히말라야 연봉들이 신비롭게 펼쳐진다.
타르쵸가 만국기처럼 걸려있다. 타르쵸는 티벳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교경전을 탁본한 종이를 줄에 매달어 두는 것. 티벳지역, 중국 장족자치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형 반구형 스투파: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황금빛 불탑으로 불탑에 그려진 눈은 부처의 눈을 상징한다.
물음표처럼 생긴 코는 네팔 숫자 1을 상징하며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뜻이다. 미간 사이에 있는 점은 진리를 보는 제3의 눈 ‘삼지안’을 뜻한다.
불탑 위 13개의 둥근 원은 해탈에 이르기 위한 13단계의 수행과정을 상징한다.
스투파 참배는 시계방향으로 돌며 탑돌이한다.
도르제: 힌두교의 인드라 신이 들고 다니는 무기. 욕망을 끊는 힘이 있다고 전한다.
포카라로 이동. 관광버스로 약8시간 소요. 티벳난민촌 관광.
따실링 티벳난민촌: 중국의 티벳 침공 후 이주한 티벳난민 800여 명이 거주한다.
데비스 폭포(Devis Falls): 뻬딸레창고(Patale Chango). 폭포의 물줄기가 지하 땅 속으로 흘러 사라지는 폭포.
오후 포카라로 이동. 7시간 소요.
4일차 (11월 23일)
조식 전 포카라 사랑코트 전망대로 이동. 사랑코트 히말라야 산군 일출 감상.
사랑코트(Sarangkot):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히마라야 설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
페와호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 보트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며 환상적인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 설산의 풍광을 감상한다. 하늘 아래 구름처럼 뜬 설산과 호수 수면에 비친 설산을 동시 관람하며 뱃놀이 하는 기분은 신선이 된 듯하다.
이후 룸비니로 이동. 6시간 소요. 마야데비 사원 관광. 룸비니 숙박.
마야데비 사원: 11세기경 건립. 1943년 재건.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 인도 샤카족 왕자 싯다르타 고타마가 태어난 곳. 1896년 인도 아쇼카왕의 석주가 발견됨으로써 석가탄생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마야데비 석주는 기원전 249년 아쇼카왕이 이 성지를 순례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석주에 새겨진 문자 기록에 의해 기원전 623년에 태어난 석가모니의 출생지가 바로 이 룸비니 마야데비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1895년 독일의 한 학자가 룸비니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가 큰 석주를 발견한다. 그는 이를 조사 발굴하여 벽돌로 된 사원과 싯다르타 탄생 장면을 묘사한 사암 조각을 발견한다. 그 곳이 바로 싯다르타 어머니 마야데비(Maya Devi)사원터였다. 연못은 마야데비가 출산 전 목욕했던 곳으로 추정하는 푸스카르니(Puskarni)이다.
마야데비는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의 이곳에서 산기를 느껴 보리수 나무 그늘에서 석가를 출산했던 듯하다.
인도 역사상 최초로 통일 제국을 이룩한 왕 아쇼카(Asoka)는 기원전 249년 부처의 흔적을 따라 이곳을 방문하여 석주를 세운다.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신들의 사랑을 받은 파야다시왕(아쇼카)이 제위 20년에 친히 석가모니가 태언 곳을 방문하다. 박가범(세존)이 태어난 곳에 돌난간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다. 룸비니 마을의 세금을 감면하고 12.5%만 바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5일차(11월 24일)
호텔 조식 이후 바라나시로 이동 약 13시간 소요. 호텔 투숙.
6일차(11월 25일)
호텔 조식 후 바라나시 갠지스강변 일출 감상. 사르나트, 사르나트박물관 관광 저녁 힌두교의식 참관
바라나시: 힌두의 성지 중 성지. 1,500여 개의 힌두사원이 있는 3,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 순례자들의 성지 kashi. 영적인 빛으로 넘치는 도시. 실크의 명산지.
석가도 어린 시절 kashi 산 비단 옷 입었더랜다.
히말라야 빙하 녹아 흘러내린 물 인도 대평원 지나 초승달 모양 휘돌아 바라나시 도심을 지난다.
힌두인들은 갠지스강 성스런 물에 목욕하면 모든 죄업이 소멸되고 이곳에 죽어 화장한 재를 강물에 띄우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들에겐 최고의 행복이라 믿는다.
시내는 자전거 인력거 오토릭샤 오토바이 택시 버스 짐차 행인 소 개 먼지 매연 소음이 뒤엉켜 혼잡의 극치를 이룬다. 길이란 길이 미어지도록 들어찬 순례자들의 행렬 아무데서나 어정거리는 소, 지붕 사이를 뛰어다니는 원숭이들, 들것에 실려 지나가는 시체,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들, 소똥, 개똥, 오줌, 각종 오물, 악취가 코를 찌른다.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노숙자들, 구걸하는 거지들 여행자가 보이면 아귀떼 같이 달려든다.
나그네에겐 지옥같은 곳인데 그들에겐 성지란다.
보트를 타고 갠지스강 일출을 감상한다. 강변 가트 풍경도 감상한다. 목욕하는 여인, 빨래하는 사람, 화장터의 화장하는 불빛이 활활 타오른다. 가트 한켠에 앉아 명상하는 수행자도 보인다.
마니카르니카 가트에는 시신을 태운다
상주는 긴 장대로 시신을 고루 타도록 뒤적인다
곁에는 개가 어슬렁거리며 시신 토막을 물고 간다
타고 남은 재와 뼈는 강물에 흘려보낸다.
강물 한 켠에는 남녀노소 강물에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성수라고 물병에 물을 담아간다.
갠지스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무심히 흘러간다
사르나트: 녹야원(鹿野苑)
다메크탑: 다메크 스투파. 대법안탑(大法眼塔) 320년-550년 굽타시대 건립. 높이 43m, 기단 직경 36m, 1835년 탑속에서 5세기 서체로 써진 석판의 법신게(法身偈)가 발견되었다.
석가모니 득도한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까지 11일 동안 걸어서 도착해 최초로 다섯 제자에설법을 한다. 녹야원 넓은 경내에는 승원터, 전각터, 아쇼카왕이 건립한 석주 등이 있다.
사르나트고고박물관: 녹야원 후문 쪽에 있다. 박물관 내부엔 아소카왕이 기원전 3세기 경에 사르나트 경내에 건립한 석주의 윗부분인 4마리 사자석상이 보존되어 있고 석가가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의 불상 전법륜상(轉法輪像)이 전시되어 있다.
7일차(11월 26일)
호텔 조식 후 카주라호로 이동 약 12시간 소요. 카주라호 자이나교사원 관광. 호텔 투숙.
카주라호의 동쪽 사원인 3개의 자이나교 사원 중 2개 관광
자이나교 사원: 샨티나드 사원, 아디나트 사원, 빠르스바나트 사원
아디나트 사원(Adinath Temple)
빠르스바나트 사원(Parshwanath Temple): 3개 사원 중 가장 크다. 자이나교 대표 사원.
자이나교 신상은 불상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원 외벽에 많은 여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화장하는 여인, 발의 가시를 빼는 여인등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성행위하는 미투나(mithuna)는 안 보인다.
자이나교: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기원전 6세기 경 마하바라(본명 바르다르마나)에 의해 시작된다. 고행 수도, 비폭력, 무저항주의, 살생 엄격 배격, 철저한 금욕생활을 표방한다. 마하트마 간디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철저한 무소유 실천. 승려들은 나체로 생활한다. 득도한 사람을 ‘지나(Jina 勝者)라 한다.
8일차(11월 27일)
호텔 조식 후 카주라호 서쪽 힌두사원 관광
카주라호 서쪽 사원
카주라호에 있는 사원들 중 여러 개는 힌두교의 파괴의 신이자 찬델라 군주들이 가장 숭상했던 신인 시바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러나 찬델라 왕조는 힌두교의 다른 분파는 물론 자이나교와 불교 등, 서로 다른 신앙 체계를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카주라호에 사원이 지어진 다른 신들로는 힌두교의 신인 최고신 브라마, 최고신 비슈누, 태양신 수르야 데브, 여신인 칼리, 그리고 자이나교 최초의 '티르탕카라', 즉 성인인 아디나타 등이 있다.
이곳의 사원들은 2.4m 높이의 남근을 포함한 에로틱한 조각과 조각상들과 가장 물의를 빚어내는, 인간과 동물 간의 성행위를 나타낸 조각 장면들로 인해 유명해졌다. 에로틱한 조각으로 장식된 가장 명성 높은 사원들은 힌두교의 라크슈마나, 칸다리야 마하데바, 둘라데오, 데비 자가담비, 그리고 자이나교의 파르수바나트 신전들이다. '미투나스', 즉 사랑을 나누는 커플들과 '나이카스', 즉 여주인공들은 관능적이고 요가 동작 같으며 에로틱한 포즈를 취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종교학자들은 이러한 조각품들이 영적이고 신성하다고 여기는 파와 불경스럽다고 여기는 파로 나뉜다.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샤스트라(힌두교의 학술적 경전)의 전통에 따라 지어졌다. 이들은 보통 대좌(臺座) 위에 건설되었으며, 입구 현관, 홀, 대형 홀, 전실, 그리고 중앙에 탑이 있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중앙 탑 안에는 내부 성소가 있으며, 이 안의 사당, 즉 '가르바그리하'('자궁의 방'이라는 의미) 안에는 성상이 모셔져 있었다. 세월의 흐름과 풍상으로 인해 이 지역은 손상되었고, 원래 이곳에 건축되었던 85개 사원 중 고작 22개만이 남아 서 있을 뿐이다. 1986년,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카주라호 사원들 [Khajuraho Temples]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이후 카주라호역에서 특급열차로 아그라로 이동. 8시간 소요. 아그라 숙박.
9일차(11월 28일)
호텔 조식 후 타지마할, 아그라성 관광
타지마할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이나 그 무덤을 지었다는 한 남자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Agra)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Jahan, 재위 1592~1666)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네이버 지식백과]타지마할 (두산백과)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자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네이버 지식백과]타지마할 (두산백과)
아그라성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이라고도 불리는 아그라 성은 밖에서 보면 천상 견고하고 딱딱한 요새다. 성을 빙 둘러 해자가 있고 높이가 20m, 길이가 2.5km나 되는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견고한 성벽 안에 감춰진 내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정원의 테라스와 분수대는 자무나(Jamuna) 강 건너편의 타지마할이 그렇듯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타지마할의 북서쪽 자무나 강변에 위치한 아그라 성은 1565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후대의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되었다. 특히 건축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보였던 샤 자한(ShahJahan) 시대에 궁성으로 개조되면서 화려한 건축물들이 대거 추가되고,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가 외부 성채를 건설하고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아그라 요새 [Agra Fort] (두산백과)
내부의 자한기르(Jahangir) 궁전은 악바르 대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지은 것이다. 아그라 성벽과 같은 붉은 사암으로 건설되었으며,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일품이다. 한편 흰 대리석으로 지은 카스(Khas) 궁전은 단아한 느낌을 준다.
샤 자한 황제가 만든 디완이암(Diwan-i-Am)과 디완이카스(DiwaniKhas)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디완이암은 1631년~1940년에 건설한 강연장으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백색 치장벽토로 장식을 했으며 내외부가 무척 호화롭다. 디완이카스는 귀빈들을 맞는 왕의 접견실로 1635년에 건설되었으며, 자한기르 왕이 만든 검은색 왕좌가 놓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아그라 요새 [Agra Fort] (두산백과)
가슴 시린 사연이 있으면 같은 건물이라도 다시 보게 마련이다.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MusammanBurj)는 8각형의 커다란 탑으로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테라스에 서면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MumtaxMahal)을 애도하며 만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샤 자한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아그라 성 안에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샤 자한이 만든 모티 마스지드(MotiMasjid)다. 대리석으로 만든 사원으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불리는데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외에도 궁녀들을 위한 사원인 나기나 모스지드(NaginaMasjid), 황제의 개인 예배실로 규모가 작은 미나 모스지드(MinaMasjid)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아그라 요새 [Agra Fort] (두산백과)
중식 후 시키리 이동. 1시간 소요. 파테푸르시크리 관광
파테푸르시크리
아그라에서 약 37km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한 파테푸르 시크리는 1570년부터 1585까지 짧은 기간 동안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인 악바르 대제가 이슬람교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스티(ShaikhSalimChisti)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6세기경 건설했다. 지금의 파테푸르 시크리에 은거하고 있었던 이 성자는 악바르 대제에게 아들(훗날 자항기르 황제)의 후사를 예언하며 신뢰를 받은 인물이다.
인도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악바르 대제는 당시 구자라트 지방을 정복한 뒤 ‘승리의 도시(파테푸르 시크리)’를 뜻하는 이름을 짓고, 붉은 사암을 기본으로 신도시 건설에 착수했다. 구자라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장인들을 불러 모아 도시를 지었기 때문에 여러 양식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점이 이색적이다.
총 길이 3km, 폭 1km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파테푸르 시크리는 크게 왕궁과 사원 구역으로 나뉜다. 사원 구역의 주 출입구로 이용되는 승리의 문(BulandDarwaza)은 기나긴 전쟁 끝에 구자라트 정벌을 자축하며 1569~1577년에 건설되었다. 높이가 54m에 달하며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보다 높고 웅장하다. 악바르 대제가 아들을 얻으리라고 예언한 샤이크 살림 치스티의 무덤(ShaikhSalimChishti’s Tomb)은 사원 구역에서 유일한 대리석 건물이다. 지금도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인도 여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그 밖에도 무굴제국 시대에 세워진 모든 이슬람 사원의 원형인 자마 마스지드(JamaMasjid), 힌두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각각 상징하는 다양한 양식이 결합된 다르가 사원(DargahMosque), 종교 대통합을 추진했던 악바르 대제가 4대 종교 지도자들과 회의를 하던 디와니카스(Diwan-i-Khas), 공식 접견실이었던 디와니암(Diwan-i-Am), 왕비들과 왕실 여인들이 머물던 독특한 양식의 궁전과 정원, 연못 등을 관람할 수 있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악바르 대제가 제위 말년에 수도를 다시 아그라로 옮기면서 지난 400여 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 이후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주요 건물들이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아그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당일 코스로 즐겨 찾는다.
[네이버 지식백과]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관람 이후 자이푸르로 이동. 4시간 소요. 자이푸르 숙박.
10일차(11월 29일)
호텔 조식 후 자이푸르 관광. 암베르성, 하와마할, 천문대 등 관광 중식 후 델리로 이동. 5시간 소요.
암베르성
1592년 자이푸르의 라자만싱(RajrManSingh) 왕이 건축하기 시작해 약 150여년에 걸쳐 18세기 스와이자이싱(SawaiJaiShingh) 왕에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암베르성은 원래 11세기 초 미나(Meena)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1592년 라자만싱 왕이 원래 성이 있던 곳에 새로운 성을 세웠고 18C 중엽 스와이자이싱 왕에 의해서 자이푸르에 새로운 성을 건설하고 옮기기까지 약 700년 동안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이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마오다(Maotha)호수와 무굴양식의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다.
성은 붉은 사암과 대리석을 이용해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조화를 이루었다.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와 벽화들이 아름답게 내부를 장식하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한 거울궁전이 있다. 이 거울궁전은 채광이 좋아 촛불 하나로 온 방을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은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커튼에 물방울이 이슬처럼 흐르게 하는 가느다란 관을 설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암베르궁 [Amber Fort] (두산백과)
하와마할
자이푸르 시내의 중심가가 내려다 보이는 5층짜리 성으로 1799년 스와이 프라탑 싱(SawaiPratapSingh)이 건축하고 라찬드 우스타(LachandUsta)가 설계를 맡았다. 자이푸르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이 성은 세상 밖으로의 출입이 제한되던 왕궁 여인들이 도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자이푸르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바람이 잘 통하는 격자형 창문이 벌집처럼 많아‘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성은 분홍 빛과 붉은 사암으로, 성의 외벽이 도로와 맞닿도록 건축되었다. 성의 1,2층은 정원으로 연결돼 있으며 성에는 약 953개의 작고 둥근 포대와 같은 공간이 층을 이루고 각 공간에는 작은 발코니, 아치형 지붕, 격자형 창문이 나있다.
[네이버 지식백과]하와마할 [Hawa MAHAL] (두산백과)
자이푸르 잔타르 만타르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는 18세기 초에 세운 천문대 유적이다. 20여 개로 구성된 주요 관측기구가 땅에 고정되어 있다. 잔타르 만타르는 대개가 고유한 특성을 지닌 유명한 관측기구 가운데 대표적인 석조 건축물이다.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18세기 초반 인도 땅에 세워진 기념비적 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보존이 잘되어 있다. 어떤 기구는 일찍이 설립된 천문대 가운데 가장 큰 것도 있다.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많은 문명에서 받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c)의 우주천동설을 천문학 전통으로 따른다.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이 관찰 천문학에 따라 지이(Zij) 천문도 완성에 공헌하였다. 이는 천문학 전통을 놓고 보면 늦어졌지만 기념할 만한 일이다.
마하라자 자이싱 2세(JaiSinghII)가 추진하여 설립한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다양한 과학 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널리 퍼진 사회의 관행을 우주론과 연결할 수 있었다.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는 도시 규모, 시간 통제,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예측 능력을 상징하였다. 또 정치, 과학, 종교의 필요성을 조화롭게 구현한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 [The Jantar Mantar, Jaipur]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이후 델리로 이동. 5시간 소요. 호텔 투숙.
11일차(11월 30일)
조식 후 델리 관광. 라지갓트, 시크교사원, 꾸툽탑, 인도문,
라지가트
랄 킬라 뒤쪽 야무나강(江) 남쪽 마하트마 간디 거리에 있다. 간디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으로, 1948년 1월 30일 극우파 힌두교도 청년에게 암살당한 마하트마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내부의 푸른 잔디밭 중앙에는 검은 대리석의 네모난 단상이 있는데, 언제나 참배객의 꽃으로 덮여 있다. 단상의 정면에 간디의 마지막 말 "HaiRam(오, 라마신이시여)"이 새겨져 있다.
라지 가트 건너편에는 간디기념박물관(GandhiMemorialMuseum)이 있다. 라지 가트 주변은 인도 유명 인사들의 화장터가 있는데 가까운 곳에는 네루 집안 3대(네루, 산자이 간디, 인디라 간디)의 화장터 샨티 바나가 있고, 북쪽에는 제2대 총리 샤스트리의 화장터 비자이 가트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라지 가트 [Raj Ghat] (두산백과)
시크교사원
시크교 신도 ‘시크’는 한눈에 구별 가능. 수염,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이 특징
압도적 다수가 터번을 두르고 긴 수염 고수.
구루 나나크(GuruNanak, 1469~1539)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절충해 창시. 전 세계 2,500만 명 신도 보유. 펀자브지방에서 출발, 시크의 약 75%가 펀자브州 거주
힌두와 이슬람이 혼재된 종교
유일신 신앙을 바탕으로 전투 중 순교 인정 - 이슬람
화장(火葬)하는 장례 문화, 해탈을 믿는 신앙 - 힌두
카스트제도 거부, 갠지스강 순례는 선택사항
만모한 싱, 구즈랄 싱 등 2천만 명 신도가 동일한 성씨 사용
[네이버 지식백과]시크교를 아시나요 (SERICEO - 나마스떼 인디아)
시크의 3가지 특징
1. 근면함
- 거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부지런한 것이 특징
- 인도 총인구 중 시크 비중 2%
- 인도 전체 세금의 20% 납부
- 펀자브州 연평균 주민소득, 전체 인도 평균소득의 2배 이상
- 농업 외 기계공작, 교통운송 등에서도 뛰어난 재능 보유
- 수도 델리 택시는 대부분 시크가 운행
-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막강한 구매력을 과시
[네이버 지식백과]시크교를 아시나요 (SERICEO - 나마스떼 인디아)
2. 용맹함
- 인도 군인의 20%가 시크
- 인도 지배 당시 영국군은 신체조건이 좋고, 상무정신이 강한 시크 영입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시크가 영국 산하 인도군의 25% 차지
- 反영운동에 나선 시크도 상당수
3. 따뜻함
- 시크 사원 구루드와라,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방문객에게 쉴 곳과 식사 제공
- 방글라사히브 사원, 매일 5만~7만 명에게 음식 제공
- 비용은 기부로 충당
꾸툽탑
이슬람 건축이 남긴 최초의 유산 중 하나인 쿠툽 미나르는 마구 뻗어 있는 쿠툽 지역의 한 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 있다. 이 지역 건축물들 중에서는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데,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의 잠(Jam) 미나렛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쿠툽 미나르를 세운 사람은 델리 최초의 무슬림 군주인 쿠툽-우드-딘 아이박으로 추정되나, 사실 그의 통치 기간에는 1층만 완성되었을 뿐이다. 그의 후계자인 일투미쉬, 그 뒤를 이은 피로즈 샤 투글라크가 그 위로 층을 계속 올리도록 했고, 그 결과 72.5미터라는 놀랄 만한 높이의 세계 최고(最高) 벽돌탑이 탄생했다. 탑의 직경은 기단부는 14.3미터,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져 꼭대기에서는 3.5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각각의 층들은 다면체의 기둥형으로 복잡한 조각과 비문들이 표면을 덮고 있으며, 여러 왕조에 걸친 이슬람 스타일의 세렴됨과 진화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모두 다섯 개의 층에는 각각 까치발로 받친 발코니가 달려 있다.
이 탑의 목적에 대해서는 수많은 가설이 있어 왔다. 전통적으로 모든 모스크가 그렇듯 쿠툽 미나르 역시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한 미나렛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쿠우왓 울 이슬람 모스크 바로 옆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그 규모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아프간의 술탄 구르의 무하마드가 델리 최후의 힌두 왕조인 차우한을 무너뜨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승전탑이라는 설명 쪽에 무게감이 실린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 역시 스무 개가 넘는 브라만 사원을 파괴한 뒤 약탈해 온 자재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쿠툽'이라는 이름은 '축'을 의미하며,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축을 자임하는 의미이다. 이 탑의 역사적 계보야 어떻든지 간에, 쿠툽 미나르는 그 오랜 세월을 훌륭히 이겨내고 델리 남쪽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쿠툽 미나르 [Qutub Minar]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인도문
파리의 개선문을 바탕으로 에드윈 루티언스에 의해 설계된 문 모양의 기념비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영국령 인도 제국의 군인 약 8만 5천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높이 42m의 아치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인도 병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석식 후 악체르담 사원 관광.
악샤르담(Akshardham) 사원
델리에 있는 현대의 힌두 사원. 2005년 11월 6일 개장. 델리 여행객 70%가 찾는 명소. 세계최대 종합적 힌두사원으로 기네스북 기록 보유함.
이후 델리 공항으로 이동.
12일차(12월 1일)
인천발 아시아나 항공으로 귀국.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1.25.인도 사르나트-사진 (0) | 2018.09.11 |
---|---|
2017.11.25.바라나시-사진 (0) | 2018.09.11 |
2017.10.16-10.19.오선 규슈 배낭여행 (0) | 2017.10.20 |
2017.5.13-5.18.카자흐스탄 러시아 여행 (0) | 2017.05.20 |
중국길림성고구려유적 (0) | 2014.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