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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해마다 4월이면 쌀 떨어진 집부터 살구꽃이 피었다
살구꽃은 간지럽게 한 송이씩 차례대로 피는 것이 아니라
튀밥처럼 겨우내 살구나무 몸통을 오르내리며 뜨겁게 제 몸을
달군 것들이 동시에 펑,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살구꽃은 검은 눈망울을 단 아이들이 맨발로 흙밭을 뒹구는
한낮에 피는 것이 아니었다
살구꽃은 낮은 지붕의 처마 밑으로 어둠이 고이고, 그 어둠이
꾸벅꾸벅 조는 한밤 중에 손님처럼 가만히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새벽이 오면 오갈 데 없는 별들의 따뜻한 거처가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중략-------
살구꽃은 제 몸의 모든 기운을 한 곳으로 모아 열매를 맺고 난 뒤
열매가 단댠하게 가지 끝에 매달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타깝게 지는 것이었다 ----------후략--------
-문신 작 '살구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