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아버지의 편지
얘야, 봉답논 서 마지기 논바닥에
올챙이가 배를 뒤집고 죽어가던
그해 여름은 1982년이었단다
니가 스물 한 살이던 해였지
그해 따라 니 웃음 소리가 유난히 찌렁찌렁
너의 서울 사람과 더불어 이 갈라진 논바닥까지 넘나들고
니가 날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스물 한 살 젊음을 위해 꿈꾸는 법을 배운다고 편질 할 때마다
애비는 기꺼워 미친 듯 헐떡이며 우물을 팠었지
말라 비틀어진 감자는 고사하고
반쯤 생기다 만 강낭도 그나마 괜찮다만
너의 아름다운 서울 사랑을 위해
노랗게 시들다가
빨갛게 시들어가도 모 포기만은 살려야 했기에....
끝내 비는 오지 않고
봉답논 서 마지기에 모 한 포기 살리지 못했으면서도
행여 니 하늘 같은 꿈에 금이라도 갈까봐
니 사랑의 푸름을 누가 업신여기기라도 할 까봐
몰래 애비는 땀방울까지 쥐어짜면서
니한테 돈을 보내 주곤 했었지
얘야 그렇게 그렇게 해를 보냈더니
어느덧 니가 졸업반이 되었구나
니만 믿고 살아온 애비 어미도
이제는 허리 좀 펴고 살 날 오겠구나
농사짓지 않고도 살 수가 있겠구나
남들은 샘이 나서 그런지
시방은 대학을 나와도 옛날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만
어디 그런 사람들이 니만큼 알고나 하는 소리겠느냐
에미는 요즈음도 니 생각을 하느라고
고구마라도 빨리 캐야 니 주인집에 한 자루 보낼텐테 하면서
늦도록 잠을 자지 않다가도
제풀에 곤한 잠에 떨어진단다
닐 키우랴 공부시키랴 쭈글쭈글해진
얼굴과 뭉툭한 손마디를 보면
공연히 나도 코끝이 시큰거려 돌아눕는다
아무튼 이제 니가 곧 졸업을 하게 된다니
무엇보다도 반갑고 기쁘구나
그러면서도 막상 졸업을 한다고 하니
어깨춤이라도 추어야 할텐데
춤은 고사하고
오히려 뒷바라지한 4년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주책스럽게 눈물은 왜 나는지 모르겠다
오냐 오냐 남들도 다 졸업할 무렵이면
돈은 더 많이 든다고 하더라
오는 장날에 고추와 마늘이 팔리는 대로 곧 보내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른 학생들에 비시받히지 않도록 하면서
환절기에 특히 감기 조심하고
부디 몸성히 잘 있거라.
시 : 윤승천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