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모악산

雲舟미카엘 2016. 12. 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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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일시 : 2016. 12. 1()

코스 : 금산사매표소-금산사-모악정-모악산정상-수왕사-대원사-선녀폭포-모악산관광단지주차장. 소요시간 : 11:20-15:00. 03:40 소요.

 

정상 아래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 같아 모악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엄뫼, 큰뫼로 부르기도 했다는데 엄뫼는 의역하여 모악(母岳)으로 큰뫼는 큼을 음역하여 금(), 뫼는 의역하여 산()으로 하였다고 금산사지에 기록되어 전한다고 한다.

 

모악춘경(母岳春景)은 변산하경(邊山夏景) 변산반도의 녹음, 내장추경(內藏秋景) 내장산의 가을 단풍, 백양설경(白羊雪景) 백양사의 겨울 설경과 함께 호남의 4대 절경이다.

또한 모악산은 호남의 조망대로도 유명하다. 맑은 날에는 북쪽의 미륵산, 계룡산, 대둔산, 동쪽의 고덕산, 경각산, 오봉산, 성수산, 만덕산, 덕유산, 지리산 남쪽의 회문산, 강천산, 무등산, 서로는 내장산, 방장산, 변산 등 온갖 산과 서해 바다가 한 눈에 잡힌다.

 

모악산관광단지를 지나 대원사 방향 모악산 들머리에는 시인 고은의 모악산시비가 있다.

 

<모악산>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 데 사람들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풀과 나무 어진 짐승들 한 핏줄이외다

세세생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도 한 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 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랑이외다

오 내 마음 여기 두어

 

과연 고은 시인의 싯구대로 모악산은 산행을 해 보니 험하지도 않고 오르기 힘든 아주 높은 산도 아니고 우리들처럼 먼 데 사람들 마저 어서 오라고 많이 알려진 어머니 품 같은 편안한 산이었다. 멀리 멀리 금만평야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가슴 넉넉한 산이었다.

 

박순호님이 쓰신 시 모악산도 한번 감상해본다.

 

한때 금산사에서

살았던 춘명 스님은

 

모악산은

인자한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산이라고 합디다

 

모악산은

극심한 보리 흉년이나

6·25와 같은 난리통에도

산과일이 배로 열려서나

 

근동 사람들은

그 열매를 따먹고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삼존 미륵부처님의 가피력이라고

합디다요

 

금산사 경내에 여러 시인들의 작품들이 탐방객들을 반긴다. 그 중 마음이 가는 몇 편을 읽어 본다. 이택희님의 작품이다.

 

<휘모리에서 진양조로>

 

밀고 당길 줄도

맺고 풀 줄도 몰랐다

추임새에 홀린 채

이면(裏面)도 모르고

휘모리 자진모리로

헐떡이며 달려왔다

 

이제는 진양조 가락에

한없이 늘어지다가

때로는 중중머리로

어깨 춤을 추기도 하고

가끔은 엇모리 가락에

한눈도 팔고 싶다

 

<꽃 공양>

 

마음이 어지러울 땐

꽃을 꽂는다

 

한 송이 두 송이

그의 모양과 빛깔에 맞는

꽃자리를 찾아 주다 보면

세상은 어느 사이

꽃밭이 되고

 

향기는 손끝을 떠나

법향이 되고

 

일렁이던 마음 한 자락

시나브로

연화장에 든다

 

: 이계숙

 

 

<뻐꾸기>

 

그 봄날

뻐꾸기

시골 분교에 와서

새봄을 노래하고 갔다

해마다

뻐꾸기

폐교된 분교 운동장에

온통 봄의 발자국

찍어 놓고 갔다

아이들이 뛰놀던 교정에

풀들이 아이들 대신

운동장을 메우고

오솔길 따라

뻐꾸기 발자국 따라

논에는 자운영 꽃 만발했다

 

: 이영근

 

금산사 지나 금산사계곡 따라 모악정 오르는 길에 김제모악산악회에서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비문이 있다. 비문의 내용과 시어들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읊어 본다.

 

<모악예찬>

 

산에 오르면

산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우리 모두가 성스러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끼리

모임을 가진지 열다섯 해

그 이름 모악산악회

모악산은

우리 고장의 태산(泰山)이요 영산(靈山)이다

백제 땅 벽골제의 수원(水源)이요

금만평야(金萬平野)를 살찌우는

어머님의 젖줄일세

그리고 모악산은

겨레의 애환이 서려있는

민족신앙의 발상지요

영원한 조국의 혼불

고향땅 어머님의 품안이여

 

산행 이후 인근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을 찾았다. 해설사가 친절하게 술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데 그 중 술의 어원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었다.

 

술은 ()와 순우리말인 불()이 결합된 수불에서 나온 말로 술을 만들 때 끓이지 않았음에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거품이 올라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수불>수ᄇᆞᆯ>수울>수을>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이라는 용어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술을 즐기고 있지만 술의 어원을 정확히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술은 두 얼굴을 지닌 음료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약 중의 으뜸인 백약지장(百藥之長)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狂藥)이나 죽이는 독약(毒藥)이 되기도 한다.

술은 마시는 사람과 취하는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불가(佛家)에서는 곡차(穀茶), 반야탕(般若湯 지혜의 물), 도화우(桃花雨 복숭아 꽃비) 등으로

문인 풍류객들은 망우물(忘憂物 시름을 잊게 하는 것), 미록(美祿 아름다운 양식,행복), 조시구(釣詩鉤 시흥을 끌어내는 갈구리), 소수추(掃愁帚 시름을 쓸어내는 빗자루) 등 멋진 말로 술의 덕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반면에 술이 과하여 폐가망신(廢家亡身)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미혼탕(迷魂湯 영혼을 혼미하게 하는 물), 화천(禍泉 재앙의 샘) 등 부정적인 언어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박물관 입구 정원에는 사각 6면과 육각 8면 등 총 14면의 주사위 모양의 석물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처음 보는 것으로 용도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주령구라는 것으로 신라인들이 가지고 놀던 놀이 도구로 총 14면의 주사위에 각각 다른 벌칙이 새겨져 있다. 술을 마시고 즐기던 풍류객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놀이에서 패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벌칙은 매우 다양하고 재미있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의 해학과 유머가 멋스럽게 느껴진다.

 

삼잔일거(三盞一去) 술 석 잔 한꺼번에 비우기

중인타비(衆人打鼻) 여러 사람이 코를 때리기

임의청가(任意請歌) 아무에게나 노래 시키기

양잔즉방(兩盞則放) 두 잔 술 단숨에 마시기

곡비즉진(曲臂則盡) 옆 사람과 팔짱끼고 술 마시기

금성작무(禁聲作舞) 노래나 악기 연주 없이 춤추기

유범공과(有犯空過)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꼼짝하지 않기

음진대소(飮盡大笑) 받은 잔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자창자음(自唱自飮) 혼자 노래 부르고 혼자 마시기

농면공과(弄面孔過) 얼굴을 간질어도 꼼짝 않기

공영시과(空詠詩過) 시 한 수 읊기

월경일곡(月鏡一曲) 달을 보며 노래 한 곡 부르기

추물막방(醜物莫放) 더러운 것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만취한 모습 흉내내기


주령을 통해 신라사람들의 음주문화 일부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